공무원 한국사- 조선시대에 발달한 예학과 보학 기본내용 정리해봐요

 

 

 

 

조선 시대 향촌을 주도한 세력인 사림! 사림은 도덕과 성리학적 사회질서를 중요하게 생각하던 세력이었습니다. 예학과 보학 또한 성리학적 윤리를 중요하게 생각했음을 보여주는 학문으로, 사림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데요.

 

 

 

 

 

 

 

 

오늘은 조선 시대 예학과 보학이 어떻게 발달하였는지 내용을 함께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작해 볼까요?

 

 

 

 

 

 

 

 

 

★ 예학

 

예학은 종족 내부의 의례를 규정하는 것으로 양반 중심의 신분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발달한 것입니다. 예학은 특히 삼강오륜을 기본 덕목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하여 성리학 중심으로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였는데요. 장자중심, 과부 재가금지, 서얼 차대 등의 원칙이 바로 이런 예학에서 비롯되었습니다.

 

 

 

 

 

 

 

 

 

 

 

 

★ 예학의 발달과정

 

 

예학은 16세기 중반 주자가례에 관한 학문적 연구가 시작되면서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했습니다. 16세기 후반에 접어들어 사림이 정치를 하게 되면서 그 질서가 더 강화되었고, 양난 이후에는 유교적 질서 회복을 목적으로 예학을 더욱 중요시하면서, 예학의 시대라고 불릴 만큼 예학이 발달하게 되었죠!

 

 

 

 

 

 

 

 

 

 

 

 

 

☆ 보학

 

 

보학은 '족보'를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가문의 내력을 기록한 족보가 발달한 이유는 가족, 친족 공동체의 유대를 강화하고 문벌을 형성하면서 양반으로서의 우위를 내세우기 위한 것이었는 데요, 족보는 결혼하거나 붕당을 구별할 때 중요한 자료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조선 후기에 사회의 변동이 심화되면서 양반들은 문벌 제도를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하여 족보의 편찬과 보학이 더욱더 발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습니다.

 

 

 

 

 

 

 

 

 

 

 

 

 

 

오늘은 예학과 보학에 관한 내용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예학과 보학의 공통점은 양반 문벌 제도를 더욱 확고히 하고, 다른 신분보다 우월하다는 우월의식을 가지게 하는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이 부분도 같이 정리해 두시면 좋겠죠?

 

오늘 공부한 예학과 보학은 시대적 배경과도 연관해서 공부하시면, 공부하는 데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것! 알려드리면서 이 시간 마무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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